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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서 겨울로

윤유영
황지호x조의신

의신은 교실의 문을 열었다. 등교가 조금 일렀던 탓인지 교실은 아직 텅 비어 있었기에, 창문을 가리던 커튼을 걷어 환기를 시키고는 본인의 자리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열린 창틈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물론 학교의 설비가 설비인 만큼 점점 더워져 가는 날씨에 맞춰 좋은 성능의 에어컨을 작동시킬 수도 있었지만, 역시 그냥 자연풍을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의신은 제 오른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칭칭 동여매어져 있는 가느다란 붉은 실을.

 

어느 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한 붉은 실은 의신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왜, 붉은 실에 얽힌 전설들이 있지 않나. 이 세계는 여러 신화와 전설이 존재하고 있었고, 상위존재가 그것의 증명이었다.

 

여느 창작물 속의 로맨틱한 이야기들 설정 속 붉은 실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화신이었다. 운명적인 사랑. 필연적인 사랑. 헤어진다고 하여도 다시 만날 굳건한 사랑. 그것은 영원의 기약이자, 사랑의 완성이었다.

 

여기까진 그리 심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이란 무릇 사랑 한 번씩은 할 테니까. 다만, 이 붉은 실의 끝에 있는 존재가…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이다. 오늘도 일찍 등교했군, 조의신.”

 

붉은 실의 끝에 있는 존재가… 협력자인 황지호라는 점이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활짝 핀 여름꽃들의 향이 흘러들어왔다. 그와 함께, 연결된 붉은 실이 작게 흔들렸다. 민들레 홑씨라도 삼킨 듯, 속이 간질거렸다.

 

"안녕, 황지호."

 

아직 둘밖에 등교하지 않은 교실은 조용했다. 조의신은 책을 읽었으며, 황지호는 그런 조의신을 턱을 괴고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끼며, 조의신은 동요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아이들은 이제 겉옷없이 가볍게 하복만을 입고 등교한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아니, 평화로운 일상인가?

 

활자에서 벗어난 시선이 아무도 모르게 손에 얽힌 붉은 실로 향한다. 복잡하다.

 

- - -

 

드디어 찾아온 평화에 조의신은 이 순간에 안주하고 싶었다. 이제 굴곡진 사건들도 없을 것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안심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아직은 조금 어색한 완전한 평화에 익숙해져 갈 때쯤이었다.

 

아직 겨울이었고,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하얀 눈이 내리던 날 겨울 공기는 온건하게 차가웠다. 특유의 겨울 냄새에 기분이 싱숭생숭했더랬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가게마다 화려하게 장식한 전구들과, 크리스마스트리들에 들뜬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1년 전, 은광고에 일어난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말, 다 괜찮구나."

 

허전하면서도 안심되는 대비되는 감정에 어찌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동안 급하게 하나의 목적만을 바라보고 달려와서 그런 건지, 그것을 완전히 이루고 나자 드는 허전함에 방황했다. 우웅, 웅.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던 조의신을 깨운 건 디바이스의 진동음이었다.

 

발신자는 황지호. 방학 중인데도 크리스마스이브라며 저택에 오라는 메시지로 한가득 차 있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대부분의 명절을 저택에서 함께 보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리 할 것인 줄 알았다는 말로 시작을 끊은 황지호의 메시지는 결국 오늘도 같은 결론을 보냈다. 올무가 기다리고 있다고.

 

올무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순 없었기에, 겉옷의 지퍼를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 얼굴로 향하는 겨울바람을 막았다. 겨울치곤 날이 따스하다 해도, 오래 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차가웠다. 폐에 스며든 시린 공기에 두어 번 기침하던 때였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목을 감는 느낌에 얼굴을 들자, 진갈색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황지호."

"데리러 왔다. 마지막 메시지에 마중 나오겠다고 보냈는데, 그건 아직 못 봤었나 보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서 곱상한 눈매를 둥글게 휜 황지호는 목도리를 묶고서 부드럽게 조의신을 이끌었다. 밖에 얼마나 있었지? 몸이 차군.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사소한 걱정의 말들일 뿐인데, 오늘따라 그 걱정들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조의신?"

"추워서."

 

오늘은 겨울치곤 날이 따스했다. 자신보다 더 널찍한 품은 옷으로 무장되어 있어 결코 온기 따윈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와 전혀 다른 반응에 잠시 당황하던 황지호는 이내 낮게 웃으며 조의신을 좀 더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나의 은인이 춥다고 하니, 어서 돌아가야겠군."

 

드디어 무심하던 은인이 자신에게 사적으로도 의지한다는 것에 마냥 기뻐하는 것이겠지. 조의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런 것이겠지. 그날 조의신은 조금 비참한 기분으로 사랑을 자각했다.

 

 

진족과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도 달랐다. 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체감하는 속도의 차이는 심했다. 죽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영원을 살아갈 수 있는 진족과 달리, 인간은 정해진 수명이 있고, 그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의신은,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 구세의 운명을 타고나 보통의 인간들보다 더욱더 짧은 수명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의 기억에 없는 은빛의 영웅이 그랬듯이.

 

진족들에게 자신은 '찰나'였다.

 

그렇기에 사랑을 자각했다고 한들, 이루어질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겁쟁이인 자신에겐 그럴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릇, 관계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관계가 사라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에. 잃음에 두려움이 있는 조의신으로선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막 생겨난 감정을 포기하고 체념했다. 계속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서 황지호를 볼 용기가 없어서.

 

곁에만 있음 생각이 많아졌다. 그저 감정 하나를 자각했을 뿐인데 황지호를 대하기 어려워, 내심 그를 피하고도 했었다. 물론 그때마다 번번이 귀신같이 자신을 찾아내는 황지호 덕에 피한 의미 따윈 없었지만.

 

그렇게 지금까지 자신에게만 불편한 관계가 계속 이어져 왔다.

 

이젠 차라리 그 귀신같은 눈치로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 완전히 체념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희망 사항이지만, 그렇다곤 먼저 입을 열 용기는 없어 현상 유지만 계속되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도중, 붉은 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여름이 오기 전. 느지막한 봄이라는 계절의 끝에서. 내심 바랬으면서도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다.

 

 

- - -

 

 

초여름의 공기는 만연한 햇살의 냄새가 났다. 적당히 습한, 그런 날씨.

 

더워지는 날에 반 아이들이 사 온 아이스크림이 시원했다. 황지호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하드를 물고 있는 조의신을 눈에 담았다. 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인 그는 천천히 그것을 녹여 먹고 있었다. 그 사이 툭, 하고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은 새하얀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끈적해지기 전에 닦지."

 

다 먹은 막대를 버리고서,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낸 황지호는 자연스레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린 조의신의 손을 제 쪽으로 가져왔다. 다른 손으로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쥔 조의신은 조금 경직된 얼굴로 제 손을 세심하게 닦아내기 시작하는 황지호를 내려다보았다.

 

"어서 다 먹어 치우는 편이 좋겠군. 흘러내리기 전에."

 

황지호의 말에 조의신은 먹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틈을 타, 황지호는 손을 닦는 척 희미하게 보이는 새끼손가락의 붉은 실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부터 조의신의 손에 감겨진 상위존재의 기척이 담겨있는 붉은 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와 연결된 실인지는 몰랐지만, 드디어 은인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의신이 들었다면 질색하겠지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호족의 경사라고 해도 될 법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 못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마,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에게 마음이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다 해치우고서 아직도 잡혀있는 손을 슬그머니 뺀 조의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음식을 흘리면서 먹다니, 역시 은인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하하!"

 

천연덕스럽게 여느 때와 비슷하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조의신을 골렸다. 제 마음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은혜를 입은 호족의 수장으로서, 벗으로서 이제 서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은인이 그저 행복하길 바라면 된다.

 

'그런데…상위존재가 개입했을 조의신의 붉은 실이 내게 보이다니 의문이군.'

 

실의 인연도 아닌 제삼자인 자신이 당사자들도 아닌 붉은 실이 보인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꼭, 대놓고 보라고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건 결코 아니겠지만.

 

 

---

 

계절이 한 차례 바뀌었다.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단풍들이 아래로 바람을 타고 느긋하게 떨어져 내렸다.

 

아직 조의신과 황지호의 관계는 지금까지 줄곧 평행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로 10대의 마지막 시간이 흘러갔다. 단정하게 입은 동복이 곧 졸업식이 머지않았음을 일깨웠다. 옷장으로 들어가 버린 하복은 이제 꺼내 입을 일이 없겠지.

 

가을. 수능을 준비하느라 3학년 학생들은 더없이 바빴다. 교무실에는 드나드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도서관에는 문제집을 가득 펴 놓고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조의신, 너는 졸업하면 뭘 할 계획이지?”

“글쎄.”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은광고의 교사가 되는 것은 어떤가?”

“...”

“가르치는 것을 잘 하니,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다.”

 

시험 기간만 되면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맹효돈이나 이레나와 같이 성적이 아슬아슬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3년 가까이 봐온 황지호는 단언할 수 있었다. 분명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성품도 매우 훌륭하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됐어.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래.”

 

잠시간의 침묵이 깔렸다.

 

"아, 황지호."

"왜 그러지?"

"은하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주말에 한번 시간 내줄 수 있어?"

 

사적으로 만나자는 제안은 흔하지 않은 일인지라, 황지호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눈웃음을 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의신의 제안에 응했다.

 

"은인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 - -

 

 

한 차례 또다시 계절이 지나간다. 조의신이 황지호에 대한 마음을 자각했던 계절이 왔다. 은호는 찻잔에 차를 따라 인수대로 나누어 주었다. 기말고사가 끝나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은호의 기량으로 보면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지만, 심리적 압박감이 없진 않았을 것이었다.

 

"기말고사, 수고했어."

"네, 감사해요. 의신이형."

 

기쁜 표정으로 조의신 앞에 슬쩍 다과를 밀어준 은호는 찻잔에 손도 대지 않은 채로 황지호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의외네요, 두 분이 단둘이 외출이라니."

"몇 달 전부터 약속되어 있었다."

"그래요..."

"응."

 

조의신이 긍정하자, 은호는 한숨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작게 미소지었다.

 

"잘 다녀와요. 황호님은 의신이 형 속 썩이지 마시고요."

 

티타임이 끝나고 조금 의미심장한 배웅을 건네는 은호를 뒤로 한 채로, 둘은 나란히 길을 걸었다.

 

조의신이 짠 일정대로 황지호는 군말 없이 조의신이 리드하는 대로 따랐다. 점심을 먹고 나왔기 때문에 첫 일정은 영화관이었다. 영화시간까지 조금 빈 시간은 게임방에서 보냈다.

 

황지호가 먼저 도발하고, 발끈하며 승부욕에 불탄 조의신은 나름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놀았다.

 

2시에 시작하는 영화는 평점이 좋은 로맨스 영화였다. '붉은 실'이라는 소재로 몇 번의 환생을 반복하여 전생의 인연을 이어가는 어떤 연인의 이야기는 애절하면서도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황지호는 옆에 앉은 조의신을 곁눈질하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게임방에 가고, 영화관에 단둘이 오는 것은 평범하게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흔한 놀 거리였다. 결코 착각할 만한 요소가 없는데…자꾸 착각하고자 하는 자신이 있었다. 영화의 장르를 알았을 때는 혹시 조의신도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화의 소재도…. 하필이면 '붉은 실'이었으니까.

 

조의신의 붉은 실은 이제 어두운 영화관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허공에 떠다니는 붉은 실의 끝은 비록 보이지 않아 저 실의 끝에 얽혀져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미 조의신이겐 이어질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괜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새하얗다 못해 추위에 창백해진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욕구가 일었고, 이 외출을 '데이트'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붉은 실이든 뭐든, 감정에 따라 그에게 대쉬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살아가는 그에게. 타인의 걱정이 너무나도 많은 그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기 싫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황지호는 얼굴에 절로 지어지는 쓴웃음을 손으로 가린 채로 고개를 들어 다시 스크린에 집중했다.

 

 

- - -

 

 

즐거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사람이 있는 거리엔 흰 가로등이 길을 비추었다.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몇 달 전부터 미리 오늘을 약속한 이유는 오늘로써 완전히 그를 향한 마음을 접기 위함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고, 황지호의 입으로 완벽하게 차임으로서 혼자서는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완전히 끝내버리기 위해서.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분명 오늘의 끝은 서로에게 그리 좋은 헤어짐은 아니겠지. 어쩌면 결별 사유일 수도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호족의 은인이자, 늘 제 나이대에 맞춰 이해하겠다는 뉘양스를 풍겼으니 황지호가 자신에게 결별을 선언하진 않을 것이다.

 

그의 배려심을 담보로 이기심의 형태와 흡사한 용기를 낸 자신이 한심했다.

 

“황지호, 할 말이 있는데.”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계절에 겨우 그 감정의 끝을 본다.

 

“좋아해.”

 

너는, 이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황스러워할까? 아니면 그저 친구끼리 흔히 하는 말로 받아들일까.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혹시, 혹시라도…. 같은 마음일까. 라는 작은 헛된 희망이 생겨난다.

 

도저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두려웠다.

 

“조의신.”

“...응.”

“몰랐는데, 너뿐만 아니라 나도 겁쟁이였어.”

“뭐...?”

“좋아한다, 조의신. 우린 서로 줄곧 같은 마음이었군.”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황지호가 보였다. 놀랍도록 꿈만 같은 현실에 머리가 멍했다.

 

“무슨, 잠깐...”

“그래.”

“왜...?”

 

순간, 황지호의 눈앞에 붉은 실이 선명하게 진갈색 눈동자에 새겨졌다. 그 실의 끝은, 제 새끼손가락이었다. 이제까지 삽질했던 일이 스쳐 지나가며 절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의신의 인연은 자신이었다.

 

“너라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씨가 고와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은인의 얼굴에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훤히 읽혔다. 아마 이 고백도 감정을 지우기 위함이었겠지. 조의신은 자신보다 남을 더욱 걱정하니, 진족과 인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달라 결국 혼자 남게 될 자신이 걱정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아직 너는 열아홉이지. 아직 멀리 있는 미래를 걱정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아직 많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너는 걱정하겠지.”

“...”

“언젠가 다가올 이별은 슬프겠지. 그래도, 이 세계에는 윤회가 있으니 다시 너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해?”

 

조의신의 목소리는 울 것과 같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황지호는 조의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작년의 겨울날처럼.

 

“방금 너의 손과 나의 손에 얽힌 붉은 실을 보았거든.”

 

붉은 실은 영원의 약속이니, 확신의 근거론 충분하지.

 

황지호도, 보였구나. 흐려지는 시야에 이내 조의신은 고개를 숙였다. 겨울에서 겨울로 이어진 감정은 비로소 제 짝을 찾았다. 어느 상위존재의 축복을 머금은 실은 인연이 완성되자 더욱더 새빨간 색을 띠었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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