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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과거, 지금

대표
염준열x조의신

한적한 길 위에 마주선 두 사람을 따스한 햇빛이 포근하게 감싸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꽃내음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염준열이 조의신을 향해 반짝이는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고, 조의신 또한 그에 화답하듯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염준열은 확신했다. 지금이 적기라고. 조의신에게 고백 할 완벽한 순간. 염준열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온갖 사랑시들을 뱉어낸다. 제 앞에 선 사람을 향한 열렬하고도 뜨거운 감정을 속삭인다. 조의신의 뺨이 사랑스럽게도 붉게 물들었다. 염준열의 기나긴 고백이 끝나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마침네 조의신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있잖아요, 준열 선배, 저 사귀는 사람 있어요.

 

예상하지 못한 단어의 연속은 사람을 한순간이라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됐을까. 소중한 존재에게 거짓말을 하고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조의신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조의신은 상태창을 열어봤다.

 

[남은 시간 : 22일]

 

세계를 구한 영웅에게는 잔인하게도 이제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영웅은 세계에게 결국 도구에 불과하기에, 세계는 도구에게 그리 넉넉한 시간을 주지는 못했다. 사실을 말한다면 다들 분명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잡아놓겠지.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말할 수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자신은 돌아가야만 한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의신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초상우주와의 교신은 흑막을 무찌르자마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따질 곳도, 물어볼 곳도 없었다. 다시, 그때처럼 찾아오는 전신을 감싸는 무력감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이제야 이 세계에서 살아갈 마음이 생겼는데.

 

조의신이 흑막을 물리친 후, 1년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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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단어의 연속에 혼란스러운 사람은 조의신 혼자가 아니었다. 당장 그가 혼란에 휩싸여있던 1년간 그의 옆에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운 1등 공신이자 그와 소위 말하는 썸을 타고있던 염준열은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차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애인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염준열은 조의신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타 플레이어로서 계속 활동을 이어오던 염준열 이었기에 그는 스케줄을 가야만 했다. 그는 가고 싶지 않다는 듯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을 나섰다. 익숙하게 미소를 지은 염준열은 MC의 말에 예의바르게 대답하며 방송용 미소를 유지했다. 예전부터 방송 출연은 꽤 있었던 일이니 이런 일쯤은 익숙했지만 어제의 일 때문인지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준열아, 무슨 일 있어?

 

그의 경호를 맡은 용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염준열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염준열은 그날의 일을 용족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평소와 같이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는 염준열을 용족은 그저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의신과 염준열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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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 21일]

 

조의신은 생각했다. 자신의 흔적은 이제 21일 후면 완전히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 자신은 그동안 대중들 앞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니 조작은 쉬울 것이다. 그가 이 세계에 만들어졌을 때처럼. 하지만 있던 것을 완전히 옮겨오지는 못했다. 비슷하게 얼추 맞춰놓았을 뿐이지. 초상우주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빈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신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나를 완벽하게 지울 수 없다면?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을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라도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메시지가 왔다. 방송국에서 온 출연 제의였다. 무명의 초신성이라는 이명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는지 종종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오긴 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겠지만, 지금의 조의신에게는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출연 제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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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준열이 조의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졸업 후 프리랜서 플레이어로 근근이 벌어오며 대중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던 무명의 초신성이 갑작스럽게 방송 출연을 승낙한 것이다. 떡밥이 없어 고통 받던 초신성의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염준열도 그 소식을 들었다. 왜일까, 왜 의신이가 방송에 출연했지? 염준열은 본인 스스로를 나름 조의신에 대해 잘 아는 축에 든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염준열이 아는 조의신은 절대 이런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것이었다. 특히 주변인이 엮여 있지 않을 때는 더더욱. 염준열은 이 기회에 조의신과 다시 대화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스승님이 제게 이럴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촬영이 끝났을 조의신의 대기실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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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끝난 후, 조의신은 가만히 생각했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긴 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니 뜬 창 하나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 : 20일]

 

더 이상 헛짓거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일방적인 협박이었다. 세계가 기를 쓰고 한 존재를 없애려 하는데, 반항은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괜히 함께할 시간조차 줄여버린 것에 조의신은 괴로움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때, 똑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스테프일까?

 

“들어오세요.”

 

끼익 소리를 내며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염준열이었다. 조의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근에 그에게 저지른 잘못이 떠올라 조의신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염준열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염준열의 말에 조의신이 멈칫했다. 염준열은 조의신의 미묘한 표정을 보았다. 마치 대화하기 싫다는 모양새였다. 조의신이 염준열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할 리 없지만,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순간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의 떨떠름함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염준열은 봤다.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직후 조의신이 본 건 염준열의 상처받았지만,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잘 지냈지?”

 

“네. 선배님은요?”

 

“나도 잘 지냈어. ...별일은 아니고, 촬영하러 왔다고 해서. 잘 끝냈어?”

 

“네. 다들 많이 배려해주셔셔요.”

 

“다행이네. ...그럼 난 가볼게. 다음 일정이 있어서...”

 

“네. 조심히 가세요.”

 

그게 다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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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초신성의 방송 출연을 두고 일각에서는 무명의 초신성이 신비주의 컨셉을 벗어던지고 스타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거의 맨몸으로 R급 에너미를 잡아 신기록을 세우며 이명을 받은 화려한 데뷔. 그 후 고교 시절에도 계속되어온 그의 커리어는 스타 플레이어가 되기에 적합했다. 심지어 일부 대중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명했던 대표적인 스타 플레이어 홍룡과 무명의 초신성이 선후배 관계라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함께 방송에 나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다르게 정작 두 사람은 그 많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무명의 초신성이 더 이상 매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아 더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명의 초신성 팬덤 내에서 종종 뜨던 목격담조차 완전히 없어졌다. 염준열은 조의신이 그의 애인을 보러 갔나보다 하고 넘겼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주변인들은 염준열과 조의신의 예전 관계를 알았기에 염준열이 조의신을 만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준열아, 왜 요즘 의신이를 만나지 않아?”

 

용제건의 물음에 염준열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조의신과 왜 만나지 않을까. 그건 그의 애인 때문이다. 아니, 사실 만나자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냥 후배인 의신이가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이건 다 변명이다. 내가 의신이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였지? 나는 언제부터 의신이를 피하기 시작했지?

 

그래, 그날부터다. 조의신의 애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날을 기점으로 조의신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가 만나는 것은 정체를 모르는 그의 애인뿐이었다. 그의 주변인들은 묘한 그의 태도가 내심 서운했지만, 그에게 애인이 생긴 것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후로는 그가 이곳을 금방이라도 떠날 것만 같은 눈빛을 하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겠다는 생각에 그저 안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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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 [내일 1시 잊지 마!!]

 

1-0 반 단체 메시지방에 (전)반장 김유리가 메시지를 남겼다. 황호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오랫동안 연락을 씹은 그의 은인을 내일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나이답지 않게 굴던 은인이 애인을 만든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퍽 기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같은 반 급우들을 만난 지가 꽤 되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황지호의 몸으로 대외활동을 제법 하다 보니 황지호가 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고 빼가 곤란한 일도 꽤 있었다. 다른 분신으로 만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황지호의 몸을 더 편해하기에 황호는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황호는 급우들과 함께한 추억들을 되새겨봤다. 그의 은인은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작전 때문에 피로가 쌓인 건지 학급 활동에 종종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왜 학급 활동에 갔던거지? 은인이 아니라면 딱히 학급 활동에 참여할 이유가 딱히 없었을 텐데. 그의 은인은 학교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학급 활동에는 크게 참여하지 않았다. 전부 다 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황호 님. 내일 5시에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만. 취소할까요?”

 

“...아니, 일정은 그대로 가지. 그 이전 약속은 1시 전까지만 잡아놓도록.”

 

“네. 황호 님.”

 

비서의 말에 황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대답했다. 동창회가 있었지만 왜인지 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가, 눈을 감았다. 그 자신이 왜 한순간이라도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는 자신이 이 아이들을 아끼는 이유를 잊어버린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동창회에 가는 가장 큰 이유를 잊어버렸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동창회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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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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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여기야!”

 

오랜만에 듣는 김유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다. 졸업 후 다들 바쁘게 살고 있던 친구들을 전부 한데 모아 시간 맞춰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의신은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다들 모였지? 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네! 그럼 가자!”

 

김유리의 말에 반 아이들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의신은 한블록 떨어져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어딘가 후련하고 슬픈 표정으로, 조의신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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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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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음 시간 :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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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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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준열은 조의신을 바라봤다. 조의신 또한 염준열을 바라봤다. 절절한 이별과는 어울리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에서,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염준열은 눈물을 흘렸다. 조의신은 웃었다.

 

“준열아, 울지 마.”

 

“스승님, 의신아, 내가, 내가....”

 

“마지막은 웃는 모습으로 헤어졌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해.”

 

조의신의 몸이 천천히 산화되어갔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염준열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때에 사랑 한 조각만을 확인받은 염준열은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조의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존재의 기억이 지워지길 바랐다. 기억해주길 바라고 바랬지만 지칠대로 지쳐있었기에 그는 이제 예전처럼 남을 이들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 내가 그들의 기억 속에 아픔으로 남을 바엔 모든 즐거운 기억마저도 앗아가 버리겠다고. 힘든 것은 모두 내가 가져갈테니 고통은 없었던 것처럼 그저 행복하기를. 행복했던 시간마저도 아픔이 되지 않기를. 그게 조의신의 마지막 욕심이었다.

 

모두의 기억이 하나둘씩 지워지기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조의신은 비로소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미안해... 내가... 내가 꼭 기억할게....”

 

왜 가장 기억을 잃었으면 하는 이가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것 자신은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역시 게임 운영 하나 제대로 못하던 초상우주 같은 건 믿을게 못된다.

 

조의신은 눈을 감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그 모습이라도 오래 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눈앞에 염준열이 보였다. 그의 머리카락, 몸짓, 입은 옷 하나하나마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그를 천천히 뜯어보다가, 눈에 더 이상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조의신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슬프고 또 슬픈, 그럼에도 사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힘들것을 예상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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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신은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그곳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가 사는 세계에는 이계도, 에너미도, 플레이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망겜 플마고마저도. 그리고 나니 진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10년을 함께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엔딩 보상은, 전액 환불이었다.

 

조의신은 다시 한번 인생 첫 수능을 봤다. 다시 대학에 들어갔고, 학교를 다녔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꾸준히 건강검진도 했다. 그를 따르는 후배들은 전보다 한 명 더 적어졌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후배들은 그를 잘 따랐다. 조의신은 평범하게 대학을 다녔다.

 

교수의 추천으로 회사에 취직했다. 동료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대학에서 만난 인연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다. 이제 그는 체스를 보는 것 즈음은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체스 피스를 잡지 않았다. 그의 취미는 이제 게임이 아니었다.

 

건강검진은 꾸준히 했다. 그는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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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준열은 붉은 사자 팀원들과 이계를 공략했다. 방송에도 꾸준히 얼굴을 비췄다. 그의 이명 앞에 붙은 ‘소’자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염준열은 이계를 공략했고, 방송을 나가고 화보를 찍었으며, 평소와 같이 용족과 아버지, 붉은 사자 팀원들과 시간을 보냈다. 종종 은광고 동창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의 스승은 두 명이었다.

 

그는 늘 평소와 같았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염준열은 늘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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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신은 자신의 가장 아픈 곳을 알아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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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신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는 그의 아픈 부분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지만, 이 또한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치료되고 있었다. 아예 기억 속에서 잊혀가며 치료되어가던 그 상처는 이제 그냥 그런 상처가 있었지, 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 뜻은, 조의신의 일상은 이제 거의 새로운 것, 이젠 익숙해져 버린 과거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옛것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을까, 그건 아니겠지. 그러나 조의신은 이제 블루베리와 바이올린을 동시에 볼 때 어떠한 연관성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옛것을 떠올릴 수 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게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는 이제 세계를 구한다던가 하는 일은 더 이상 떠올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지하철역 안은 어떤 게임 광고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한민국에 산다면 절대로 못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가득 도배되다싶이 한 광고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키도록 만들었다. 조의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게임을 다운로드했다.

 

[플레이어 마이스터고등학교]

 

화면에서 화려한 빛이 나며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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